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굴 제국 (문단 편집) == 국호 == 단어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인도문화권]]의 국가라는 특징 때문에 연계성을 떠올리기 쉽지않지만 '''무굴은 인도+페르시아식 발음으로 [[몽골]]이라는 의미다'''. 즉 스스로 몽골계 국가를 자처했다. 정확히는 공식 국호는 '구르카니'였는데 이는 티무르 왕조의 지배자들이 보르지긴 일족과의 결혼으로 '구르칸' 즉 부마의 칭호를 사용한데서 유래했으며, 타국인들은 그들을 차가타이인이라 불렀다. 국내외로 무굴 제국의 명칭과 관련하여 [[몽골]]과 발음이 유사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영문 위키에서는 심지어 무굴 제국과 몽골 제국이 햇갈리지 않게 따로 주석이 달려 있을 정도이다. 인도계와 이란계 모친을 둔 무굴 황제들은 오랜 혼혈화로 인해 중앙아시아인의 외모는 상실하였으나, 몽골인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무굴 제국의 공식 역사서인 <악바르나마 (Akbarnama)>에서는 무굴 황제와 티무르의 선조들을 '몽골 민족 (ulus-i Mughul)[* Abu'l Fazl, The History of Akbar, Volume I, ed. and trans. Wheeler M. Thackston(Cambridge, Mass.: Harvard Univercity Press, 2015),pp.198,200,212 (text), 199,201,213 (trans).]'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다만 인도에 정착한지 오랜 시간이 흘러 어느정도 인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인 것인지 [[힌두스탄]]()이라는 명칭을 쓰기도 했다. <악바르나마>에서도 제국을 지칭할때 힌두스탄이라는 명칭을 썼다. 실제 무굴 제국의 국가 공식 명칭이 '티무르 왕조 al-Timurriya' 또는 칭기즈 칸의 사위를 뜻하는 '구르칸 왕조 Gurkhani' 또는 '힌두스탄 Hindustān'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서양에 처음 알려질 때 '무굴'로 알려진 근본적인 원인은 당시 인도 현지인들이 일반적으로 지배층을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이는 당대 매우 일반적인 인식이었는데, 17세기 초 무굴 제국에 파견되었던 영국 최초의 공식 사신은 무굴 제국의 지배계층이 무굴인이라 불린다고 기록하였으며, 반세기 후 인도를 방문한 한 프랑스인은 무굴황제들이 스스로 칭기스 칸의 후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무굴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비록 아프가니스탄 및 중앙아시아를 끝내 수복하지는 못했지만 무굴 제국 황제들 스스로도 자신들을 칭기즈칸의 후예라고 칭하며 자랑스러워했다. 당시 인도인들은 [[차가타이 칸국]] 티무르 제국의 유목민들, 무굴 제국의 중앙아시아 출신 기마민들을 모두 몽골인(무굴인) 집단으로 보았다. 이러한 원인으로 인해 16세기 인도 역사가 피리슈타(Firishta)가 집필한 인도의 이슬람 왕조사에서도 바부르를 칭기즈 칸과 티무르의 후손으로 기술하는 동시에 이들을 모두 몽골인(무굴인)으로 지칭하였던 것이다. 이후 아우랑제브 황제 치세의 무굴 제국 역사가 카피 칸(Khafi Khan)은 진정한 무굴인이란, [[칭기즈 칸]]과 [[훌레구]], [[차가타이]], 그리고 [[티무르]]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티무르와 무굴 황제들을 몽골인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꾸준히 이어져서 19세기까지도 인도의 일반 주민들은 지배 계층인 무굴 일족을 [[차가타이]] 칸과 몽골인의 후예라고 보았다. 그러니 '무굴 제국'이라는 명칭은 현대 학계에서 통용되는 용어이지만 역사적인 현실을 반영한 매우 적절한 명칭이기에 학계에서도 꾸준히 통용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